삼라만상森羅萬象은 가고 오며 모습을 바꿔가면서 끝없이 변화한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세상은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사물의 근본으로 들어가보면 궁극은 하나(一)가 스스로 발현하여 현상을 바꿔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본체本體와 작용作用, 정靜과 동動, 일(一)과 다(多)의 관계로 본체인 하나(一)와 일통(一通)한다면 오히려 세상은 너무나도 단순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학자들이 각자 연구하는 분야는 만물 중의 극히 일부분으로서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일 수 있지만, 사물이나 현상 속에 내재한 이치를 탐구하여 사물의 이치를 궁극에까지 이르게 되면 만물의 근원과 일통(一通)하게 되어 지식의 완전함을 이루게 된다(格物致知격물치지).
뜰 앞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들꽃 한 송이에서도 우주가 모습을 드러내니 보잘것없는 사물일지라도 우주의 근원인 하나(一)가 현현顯現한 모습이기 때문이다(프렉탈 원리).
일체의 생명은 자발적이며 자기생성적 네트워크 체계로서 고도의 유기성을 가진 우주적 생명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근원은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다. 하나(一)와 우주만물(三)은 본체와 현상의 관계로서 하나(一)가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니 결국 본체계와 현상계는 일체로서 서로가 하나(一)인 것이다(一即多 多即一).
하나(一)가 음양의 묘리妙理에 의해 스스로 생성되고 작용하고 변화하면서 삼라만상이 만왕만래용변萬往萬來用變하니 우주만물(多)과 그 본체인 하나(一)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일묘연만왕만래용변부동본
하나(一)가 시작하여 묘리妙理를 한없이 펼쳐내니 삼라만상이 가고 오며 무수히 쓰임을 달리하지만 근본(一)은 변함이 없다. [천부경]
나는 홀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주생명이라는 유기체 속에 하나의 유기물로서 존재한다. 서로 각기 다른 유기물들과 상호관계하며 우주라는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호작용하면서 우주라는 유기체의 생명을 유지시킨다. 봄이 되면 생기가 돌고, 가을이 되면 외롭다. 이는 시간에 따른 기운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임을 의미한다. 나는 홀로 존재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독존獨存이지만 서로 고리(環)를 지으며 관계로서 존재하는 환존環存이다.
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
人은 中이니 天地가 하나(一)된 자리라. [천부경]
손과 발, 몸의 각 부분은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나의 몸이라는 유기적으로 완벽한 하나(一)의 체를 이룬다. 우주는 살아있는 하나의 큰 유기체가 아닌가? 나는 우주의 손이고 너는 우주의 발이며, 그대는 우주의 손가락이고 또한 그대는 우주의 발가락이다. 우리는 그렇게 우주라는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호관계성을 가진 유기물인 것이다. 내가 없으면 우주는 불구자이다. 너와 나는 서로 하나(一)이다. 우주삼라만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변만화天變萬化로 펼쳐지지만 분리될 수 없는 일체로서 하나(一)가 화현化現한 현상일 뿐이니, 일즉다一即多요, 다즉일多即一이다.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태평양 너머 먼 곳에 태풍을 일으킨다. 이것은 지구가 하나의 유기적 존재로서 서로가 연결이 되어있음을 뜻한다. 손가락 끝이 바늘에 살짝만 찔려도 아픔을 느끼는 것은 전체로서 하나의 몸이기 때문이다. 각 부분은 독자적인 기능을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완벽한 하나의 유기적 일체를 이룬다. 삼라만상은 우주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서로 관계성을 통해 비로소 존재의미를 드러내듯이 현대과학인 양자역학에서도 우주는 살아있는 하나(一)의 생명으로 인정한다. 사물놀이 패는 지휘자 없이 제각각 악기의 소리를 내지만 전체로서는 조화로운 화음을 이루어 내듯, 우주만물도 제각기 자기 자리에서 살아있는 우주 유기체를 구성하는 구성분자로서 조화로운 하나의 생명을 이룬다.
사람에게는 사람으로서의 이치가 있고, 동물은 동물로서의 이치가 있으며, 초목은 초목으로서의 이치가 있다. 각각의 이치를 궁극에까지 이르게 되면 모든 이치는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하나(一)의 이치, 그것을 태극太極이라 하고, 도道라고도 한다. 각각의 사물의 이치는 궁극적으로 하나(一)로 일통一通된다(天一地一人一). 하나(一)를 철학적, 종교적 의미로 풀이하면 하나(一)님이 되고, 존칭하여 ‘하나님 아버지’라고도 한다. 부처님이 되고, 도道가 되며, 이理가 되고 성性이 된다. 또한 과학적 견지에서는 우주에너지, 창조에너지가 되니 문명에 따라 형성된 문화적, 종교적 가치에 따라 달리 부르지만 결국은 하나(一)에 대한 별칭일 따름이다.
일시(一始), 하나(一)에서 비롯되다.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말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존재들이 가고 오며 알고자 했던 명제가 아닌가? 우주 본래의 모습인 하나(一)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철학은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수많은 선각자들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놓고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 한 여름 시원한 냉수처럼 더위를 한번에 날려버리는 정답에 나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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