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天上天下 홀로 걸어가는 외로운 나그네인가?
나는 천지만물과 어떤 관계를 지으며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강물에 띄워진 배처럼 물결 따라 흘러가는 가랑잎에 불과한가?
사람과 개는 종자가 다른 동물이니 유전자 코드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의 유전자 코드가 있고, 개는 개의 유전자 코드가 있다. 처음의 생명이 시작되는 초기의 모습은 서로 같아 보이지만 점차 자라면서 코드에 따라 사람과 개는 서로 다른 모습을 갖춰나간다.
마찬가지로 같은 유전자코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생명의 초기에는 모두가 같은 모습이지만 점차 자라면서 서로 다른 외모와 성질을 갖춰 나간다. 사람을 존재하게 하는 공식은 같지만 각자에게 부여된 코드넘버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너와 나는 사람으로서 같은 인류(人類)이지만 각자의 고유한 코드를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독립적인 존재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존재가 지문이나 홍채가 일치하는 사람이 없으니 신기하지 않은가? 이는 사람을 구성하는 존재공식에 나만의 독자적인 코드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죽어서도 나로 남아있을까?
죽음이라는 변화를 맞이하게 되면, 나는 우주심(宇宙心)이라는 용광로(우주에너지) 속에 나를 존재하게 하는 나의 코드가 녹아버려 전체 속에 흡수되어 사라지게 되는 걸까?
거대한 宇宙心(우주에너지, 하나의식, 本太陽, 光明)에 존재하는 나는 나(眞我, 本心)로서 존재한다. 우주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도 나는 우주라는 거대한 수학적 공식에 녹아 들지 않고 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수리적 공식에 부여된, 다른 이와 구별되도록 나를 특이화 시키는 나만의 코드를 유지한다. 삶과 죽음은 인간의 관점에서 구별하는 작은 개념일 뿐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변화라고 볼 수도 없는 작은 잔물결에 불과한 일체로서 양면의 모습이다. 우주적 관점에서는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의 체(體)이니, 生死의 변화에 따라 코드 그 차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낮과 밤의 차이의 변화에 불과하니 나라는 존재공식의 코드는 변하지 않는다. 지구는 부동본(不動本)인데 자전(自轉)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밤과 낮일 따름이고, 공전(空轉)에 따라 춘하추동이라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숫자는 우주에 하나밖에 없다. 나의 존재공식에 들어가는 수리적 코드도 우주에 하나밖에 없다. 나라는 정체성을 정하는 코드(number)는 영원한 것이니 나도 영원할 수 밖에 없다. 우주는 바로 그러한 코드들이 구성하는 본체이다. 괘상으로 본다면 나는 우주라는 괘(卦)를 구성하는 효(爻)로서 우주의 일부분이니, 우주본체와 하나되는 일체라는 의식의 자각이 곧 性通光明을 이룸이요. 在世理化의 삶으로 가는 길목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거대한 수학공식 속에서 부여된, 나에게 부여된,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공식이 가지고 있는 나의 코드는 우주 전체를 털어 하나밖에 없다. 코드가 잘못되면 우주는 작동하지 않는다. 어떻게 변할 수 있겠는가? 인터넷에서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유 IP라면 모를까, 우주에는 무한대의 숫자가 존재하니, 인간의 존재를 구성하는 인간공식에 개인 존재를 특이화(特異化)시키는 독립적인 숫자를 부여하는 코드도 무한대일 수밖에 없다. 그 코드 중에 하나를 가지고 있는 나는, 나만의 코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니, 다른 코드로 바뀔 일이 없고, 그러므로 나는, 나만의 독립적인 IP를 가지고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생사(生死)는 인간이 구분하는 개념으로서 이러한 작은 변화에 나의 코드가 공유IP 바뀌듯 바뀌는 것이 아닌 것이다. 생사(生死)는 나에게는 큰 변화이지만, 우주적인 차원에서는 다만 보이지도 않는 작은 변화에 불과하니, 나의 존재공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나에게 부여된 존재코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우주삼라만상은 아무런 이치도 없이 무작위로 응결되어 만들어지는 것일까? 과학적 원리는 수리적 이치를 바탕으로 성립되는 것으로 모든 사물은 그 나름의 수리적 존재공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존재공식이 올바르다면 얼마든지 물건을 창조해 낼 수 있게 된다. 사물의 궁극으로 들어가면 입자는 파장으로, 파장에서 에너지로, 에너지는 宇宙心(理)으로 전체에너지와 하나가 되어간다. 내가 나의 문을 열고 나의 의식의 깊은 곳에 일통(一通)한다면, 그것이 바로 전체의식인 하나(一)와 일체 됨을 의미하니 성통광명자(性通光明者)로서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삶을 누리며 홍익만유(弘益萬有)로서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의 자리란 바로 삼신일체(三神一體)를 각한 선인(仙人)의 자리이다.
우주는 수학이다.
숫자의 조합이다. 수학적 존재공식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허공에서도 손짓 한번으로 황금덩어리가 쏟아져 내리게 할 수도 있다. 아직 그것을 모르니 신(神)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그의 영역인 기적으로 치부하고 있을 따름이다,
天 (理, 陽) + 地 (氣, 陰) = 人 (物, 中)
나는 천리(天理)와 지기(地氣)로 이루어진 인물(人物)이다. 우주의 존재공식 속에 인간의 존재공식, 그리고 인간의 존재 공식에 부여된 나의 코드가 바로 나의 정체성이니, 나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며, 천지인(天地人)이 서로 고리지어 하나(一)가 된 환존(環存)이다. 독존(獨存)이면서 환존(環存)이니 나(我)이면서 우리로 존재한다.
▷人中은 천지음양(天地陰陽)이 하나(一)된 자리이니, 바로 내가 그이니라
천리(天理)와 지기(地氣)가 하나(一)되니 인물(人物)이라.
하나(一)와 一通한 성통광명자(性通光明者)는 선인(仙人)이며 곧 우주(宇宙)이고, 시공(時空)이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그 앞에서는 우주(宇宙)가 바로 서고 시공(時空)이 멈춰 선다.
1에서 10까지에 이르는 자연수 중에서 하나라도 빠진다면 수리(數理)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한대의 수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수리(數理)는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우주의 구성원인 내가 빠져버린다면 우주는 아예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천지와 하나되지 못하고 분리되었다는 원초적 불안감은 내가 곧 우주와 하나라는 일체감을 일통(一通)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시간은 공간에 가득 차 있는 것일 뿐 흐르지 않는다.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 공간 속에 가득한 시간, 그 속에서 내가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時는 空에 가득한 時空一體로서 서로 하나이므로 지금 움직이고 있는 이 순간이 곧 영원이며 무소부재(無所不在)이다. 지금이 곧 영원이고 영원이 곧 지금이니 우주라는 점(點)은 극소(極小)이면서 또한 극대(極大)로서 時空의 크기는 생각의 크기, 자각(自覺)의 크기와 비례한다.
공(空)이 있고, 그 공(空)에는 시(時)가 가득 차 있으니 시공(時空)은 일체(一體)로서 함께 서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건 내가 작기 때문이다. 시공(時空)과 하나(一)가 되는 성통광명(性通光明)을 이룬다면 나의 크기가 곧 宇宙의 크기, 時空의 크기가 되니, 나는 時空과 함께 서있는 것이다. 나와 크기가 時空과 함께하니 내겐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윤회(輪廻)란 작은 자가 느끼는 시간일 뿐이다.
음(陰)이 있으면 양(陽)이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다. 음, 또는 양만이 홀로 존재할 수가 없으니 음양(陰陽)이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태극(太極)이 나오게 된다. 태극이 나와야 비로소 우주만물이 비롯된다. 시공(時空)이란 우주(宇宙)의 또 다른 이름이다. 끝은 없다.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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