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최적의 방법으로서 인문학적 가치나 도덕률은 문명의 형성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문명은 환경에 적응하며 더불어 형성되는 것이므로 이에 따른 문화적 가치는 그 시대 사람들이 세운 도덕률, 종교, 학문 등 문명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종교란 그 시대의 문명과 문화의 가치를 지키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또한 그 종교의 신(神)은 인간들의 생존에 적합한 가치를 교조적인 방식으로 강제함으로써 행동방식과 양식을 정해준다. 종교에서 가르치는 도덕률에 따라 살아가게 되면 그에 따른 ‘구원’이라는 포상을 주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유지함으로써 종교는 문명과 함께 동행하게 된다.
그 시대의 문명이 무너지면 문명에 따른 종교적, 인문학적, 문화적 가치도 함께 무너지면서 새로운 문명에 따른 가치가 그 시대의 인간들의 생존에 가장 최적한 방식으로 다시 형성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종교적, 문화적 가치에 따른 교조적인 도덕률에 의해 오히려 지나치게 구속당함으로써 그 시대의 생존을 저해 받게 된다면, 그것의 존재가치는 이미 상실된다. 지금은 문명의 전환기에 있어서 기존의 가치가 흔들리면서 극심한 혼돈 속에 처해있는 상황으로 작금의 종교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새로운 문명의 흐름에 올라타려는 사람들의 생존을 방해하고 있다.
기존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충돌하면서 기존의 종교와 도덕률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도히 흐르는 강물 위에서 출발하는 배 밑에 구멍을 뚫어대고 있는 형국으로 기존의 문명과 함께 자폭하려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기존의 문명이 무너지면 그 시대를 풍미하고 지탱했던 종교와 그 종교에 따른 문명적 가치와 도덕률도 함께 침몰한다. 부서져가는 난파선에 남아 새로운 배에 올라타기를 거부한다면, 무너지는 거대한 성에 남아 고목나무처럼 굳어버린 채 죽어가고 있는 그 시대의 종교와 문명의 우두머리인 신(神)의 구원을 받고자 구걸한다면 새로운 문명이 오기도 전에 함께 침몰하게 될 것이다.
폼페이의 최후처럼 불타는 성에 남아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 고목이 되어버린 신(神)에 대한 의무이자 구원이라 믿는다면, 그리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선택이자 책임이다. 파편화된 난파선에 타고 앉아 새로운 문명을 향해 출발하는 다른 이가 탄 배 밑에 구멍을 뚫으면서 함께 자폭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의무인지, 아니면 구원에 대한 충성심의 표시인지 당신의 자애로운 신(神)에게 직접 물어보라.
새로운 문명과 가치를 향해 배를 타고 출발하는 사람들에게 환송의 손을 흔들어주라.
생존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으며, 그것을 선택하는 것도 각자의 책임이며 몫이다. 神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과 목적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며, 또한 불에 휩싸여 무너지는 거대한 성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생존가치를 찾아 또다시 새로운 성(城)을 쌓는 것도 생명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우리로서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며, 후손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삼라만상은 일묘연(一妙衍)으로 만왕만래(萬往萬來)하며 용변(用變)한다. 하나(一)에서 시작하여 변화해 나가는 것이 우주의 이치이니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다만 변하지 않는 부동본(不動本)인 근원적 하나(一)와 일통(一通)하여 중(中)을 잡으면 흔들리는 배에서도 나(我)을 잃지 않으니, 또한 그 배를 선도하는 선장이 될 수 있음이다.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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